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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킹덤(Kingdom) (K좀비, 탐욕, 촬영지)

by info48267 2026. 6. 18.

넷플릭스 킹덤은 공개 직후 글로벌 시청자들 사이에서 '갓(HAT) 신드롬'을 일으키며 아마존 한국 전통 갓 검색량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저는 처음 이 드라마 소식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조선 시대 궁궐에 좀비라니, 어울릴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보고 나서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K좀비가 할리우드 좀비와 다른 이유

일반적으로 좀비물은 총과 바리케이드로 상징되는 서구식 아포칼립스(apocalypse)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포칼립스란 문명 붕괴를 전제로 한 종말 서사 장르를 가리키는데, 킹덤은 이 문법을 조선이라는 시공간에 이식하면서 전혀 다른 결을 만들어냈습니다.

킹덤의 좀비는 햇빛이 아닌 온도에 반응합니다. 기온이 내려가는 밤이 되면 되살아나 경이로운 속도로 질주하는 방식인데, 저는 이 설정이 서양 좀비물과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총 대신 칼과 활, 그리고 산성과 수문 같은 전통 지형을 활용한 전투 시퀀스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장면들이었습니다.

IMDb와 로튼토마토 등 글로벌 리뷰 플랫폼에서 킹덤 시즌 1의 평점이 꾸준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는 것도 이런 차별성 덕분으로 보입니다. 제가 직접 찾아봤을 때 해외 리뷰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단어가 "움직임(movement)"이었는데, 기괴하게 꺾이며 달려오는 조선 좀비의 모션 자체가 충격적이었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부산행을 처음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좀비라는 소재를 한국적 정서인 부성애로 풀어낸 그 영화가 저에게는 K좀비 입문이었는데, 킹덤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장르의 지형도 자체를 바꿔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킹덤이 던지는 탐욕의 메시지

킹덤을 단순한 좀비 액션물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이 드라마의 진짜 무게중심은 다른 곳에 있다고 봅니다. 바로 '배고픔'과 '탐욕'이라는 두 축입니다.

극 중 좀비 사태의 발단은 영의정 조학주와 혜원 조씨 가문이 생사초(生死草)라는 식물로 죽은 왕을 되살린 것입니다. 생사초란 드라마 내 설정에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능력을 가진 가상의 약초로, 쉽게 말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 탐욕스러운 선택 하나가 나라 전체를 좀비 떼로 뒤덮는 참사를 낳습니다.

재미있는 건 백성들이 처음 좀비가 되는 경로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이 인육을 먹고 감염되는 구조인데, 결국 백성을 먹여 살리지 못한 권력의 실패가 재앙을 키운 셈입니다. 이 지점에서 킹덤의 메시지가 선명해집니다. 가장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니라 그 좀비를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서 학창시절에 그토록 싫어했던 한국사가 갑자기 궁금해진 경험이 있습니다. 조선의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 한명회 같은 권신들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킹덤이 담고 있는 서사와 정확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탐욕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그걸 무도하게 남을 짓밟으며 채우느냐, 아니면 정당한 노력으로 이루느냐의 차이가 처음엔 결과가 비슷해 보여도 결국에는 갈리게 됩니다. 역사도, 드라마도 그 진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킹덤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역병(좀비 사태)의 본질은 권력자의 탐욕이 만들어낸 구조적 참사
  • 백성의 굶주림을 방치한 무능한 통치가 재앙을 키우는 토양이 됨
  • 개인의 탐욕도 결국 마지막에는 진실 앞에 무너진다는 보편적 서사

창덕궁과 문경새재, 드라마 밖에서 만나는 킹덤

킹덤의 배경이 된 촬영지는 드라마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직접 가보면 감회가 다릅니다. 저는 서울 창덕궁을 꽤 자주 찾는 편인데, 그 이유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여유 때문입니다. 인정전 앞에 서거나 후원 깊숙이 걸어 들어가면 도심 한복판인데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감각이 있습니다.

킹덤에서 조학주가 음모를 꾸미던 궁궐의 밀실 같은 공간들이 바로 창덕궁의 후원(비원)과 인정전 일대를 배경으로 촬영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본 이후로 다시 창덕궁을 찾으면 건물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입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아 국제 사회가 공동으로 보호하는 유산을 뜻하는데, 킹덤 덕분에 이 공간의 역사적 무게를 다시 느끼게 된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출처: 문화재청).

문경새재 오픈세트장과 관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촬영지입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관문이었던 이 길은 드라마 속에서 역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배수진의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실제로 가보면 성벽과 관문의 규모가 상당해서 그 장면들이 왜 그토록 압도적이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포천 비둘기낭 폭포의 서늘하고 신비로운 협곡 지형도 좀비 떼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의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방영 이후 관련 촬영지를 찾는 외국인 방문객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외국인 홈스테이 학생들이 본 킹덤의 한국

저는 집에서 외국인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네 명의 학생을 받았는데, 다들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한국에 빠져 한국어를 배우러 온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도 처음 들어보는 지역 관광지나 가수를 줄줄이 꿰고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이미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온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한복 체험이 단순한 관광 코스가 아니라, 한국 콘텐츠를 통해 형성된 동경을 직접 실현하는 행위처럼 보였습니다. 킹덤에 등장하는 조선 시대 갓과 한복의 미학에 해외 팬들이 열광하며 실제 구매로 이어진 갓 신드롬과 같은 맥락입니다.

갓 신드롬(HAT syndrome)이란 킹덤 방영 후 외국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전통 모자인 갓에 매료되어 아마존 등 해외 쇼핑몰에서 실제로 구매하는 현상이 유행처럼 번진 것을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문화적 파급력이 소품 소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알려져 있지만, 킹덤은 그 선례를 만든 작품이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홈스테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킹덤을 보고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찾아봤다는 친구도 있었고, 창덕궁이 실제로 드라마 속 공간이라는 걸 알고 나서 방문 계획을 세웠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킹덤이 단순히 드라마로 끝나지 않고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로 시선을 이끌고 있다는 걸 가까이서 확인하는 경험이었습니다.

킹덤은 좀비물이라는 장르의 외피를 빌려 조선 시대의 계급 모순과 인간 탐욕의 본질을 꿰뚫는 작품입니다. 킹덤을 보고 창덕궁이나 문경새재를 찾는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면, 드라마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걷는 그 길이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여운을 남길 것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셔도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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